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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석사 과정의 꽃, 캡스톤 프로젝트(Capstone Project)의 실체
뉴질랜드 요비(Yoobee) 석사 과정(MSE Level 9)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은 ‘캡스톤 프로젝트(Capstone Project)’입니다. 학생들은 순수 연구 과제를 수행하거나, 실제 기업에서 인턴십을 하고 그 실무 결과를 연구 보고서로 제출해야 합니다. 실전 경험이 절실한 이민자들에게 인턴십은 거부할 수 없는 선택지이지만, 이는 동시에 “스스로 자리를 구해야 한다”는 거대한 전제 조건이 붙은 위험한 도박이기도 했습니다.
입학 전 유학원과 학교가 늘어놓았던 화려한 설명과는 다르게, 실질적인 기업 연계는 전혀 없었습니다. 학교는 학생들을 위해 최소한의 판조차 깔아주지 않았습니다. 오클랜드 교통국(Auckland Transport)과의 인턴 자리가 하나 있긴 했으나 제 전공과는 분야가 너무나 달랐고, 심지어 이번 학기 우리 기수 중 누군가가 그 자리에 뽑혔다는 소식조차 들리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은 사실상 방치되었고, 그 안에서 살아남는 것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었습니다. 결국 마주한 진실은 냉혹한 ‘각자도생(各自圖生)’이었습니다. 학업의 성취를 증명하는 동시에 현지 고용주에게 나를 증명해야 하는 이 이중의 과업은, 인턴십 자리를 구하지 못할 경우 졸업 자체가 불투명해질 수 있다는 무거운 압박감으로 다가왔습니다.
엇갈린 시계바늘: 4월, 인턴십의 동토(凍土)를 걷다
뉴질랜드 IT 시장의 고용 시계는 철저히 ‘서머 인턴십(Summer Internship)’을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보통 11월에 시작해 2월이면 마무리되는 이 주기는 대학교의 여름 방학에 맞춰져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인턴십 자리를 찾아 헤매던 시점은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4월이었습니다.
이미 대기업과 유망한 스타트업들은 서머 인턴십 프로그램을 종료하고 정식 채용 프로세스로 넘어간 상태였습니다. 시장에는 공고 자체가 씨가 말랐고, 직접 기업의 문을 두드려도 “시즌이 끝났다”는 차가운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비자 장사에 최적화된 학교의 일정은 이 황금 같은 주기를 보란 듯이 빗겨나갔고, 학생들은 아무도 찾지 않는 계절에 홀로 전장에 버려진 셈이었습니다.
행정적 민폐: 학교가 기업에 주는 ‘귀찮은 숙제’
어렵사리 관심을 보이는 곳이 있더라도, 학교의 행정 시스템은 다시 한번 발목을 잡았습니다. 요비는 기업 측에 방대한 양의 서류 작업과 매주 반복되는 평가 리포트 작성을 요구했습니다.
현지 기업 입장에서는 최저시급을 주며 가르쳐야 하는 인턴을 채용하면서, 학교의 복잡한 행정 절차까지 떠맡아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학교는 학생의 취업을 돕는 보증 수표가 아니라, 기업이 채용을 꺼리게 만드는 장애물이 되어버린 상황이었습니다.
묘한 운명: 불신하던 시스템 속에서 찾은 기회
절망적인 4월의 구직 시장에서 저를 구원한 것은 아주 현실적인 네트워크(Network)였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통로는 또 다른 ‘유학원’이었습니다. 물론 한국에서 저에게 장밋빛 환상을 심어주었던 그 유학원은 아니었지만, 이민 산업 전반에 대해 깊은 불신을 느끼던 저에게 유학원이라는 공간은 여전히 복잡한 감정이 교차하는 곳이었습니다.
마침 유학원에서 일하던 지인을 통해 내부 IT 직원이 갑자기 그만두게 되어 빈자리가 생겼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당장 캡스톤 프로젝트를 완수하고 생존해야 하는 저에게 그것은 따질 겨를이 없는 유일한 동아줄이었습니다. 시스템의 모순을 비판하면서도, 결국 그 시스템의 일원이 되어 인턴십을 시작하게 된 이 상황은 이민자의 삶이 가진 지독한 아이러니를 보여주었습니다.
뉴질랜드 IT 인턴십: 최저시급 인턴으로 시작해 기술적 자존심을 증명하는 법
비록 화려한 테크 기업은 아니었지만, 한 작은 유학원의 유일한 IT 인턴으로 시작한 이 여정은 저에게 소중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최저시급을 받는 미약한 시작이었지만, 제가 감당해야 했던 업무의 밀도는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낮에는 프론트엔드와 백엔드 개발은 물론, 인프라 구축과 일상적인 IT 지원 업무까지 도맡아야 했습니다. 시스템의 분석과 설계부터 실제 구현까지, 사실상 1인 테크 조직이 되어 모든 과정을 책임지는 동시에 저녁에는 학교 연구 과제까지 정리해야 하는 강행군이었습니다. 인턴인 동시에 스스로가 슈퍼바이저가 되어 모든 행정 서류까지 도맡아야 했던 기묘한 환경이었지만, 저는 그곳에서 시니어의 자존심을 걸고 ‘최선’이 무엇인지 증명하기로 했습니다.
8년 동안 방치되어 있던 레거시 코드를 완전히 갈아엎고 마이크로서비스(MSA)로 전환하는 대수술을 시작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부하 상황에서의 성능은 2배 향상되었고, 보안 취약점은 80%나 감소했습니다. 후에 올 후배 개발자를 위해 확장성이 극대화된 인프라 환경을 구축하며, 저는 제가 떠난 자리에도 흔들리지 않을 기술적 유산을 남겼습니다.

이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저는 ‘If it ain’t broke, Don’t fix it(고장 나지 않았다면 고치지 마라)’이라는 역설적인 제목의 연구 과제를 써 내려갔습니다. ‘Strangler Fig Pattern’을 적용해 거대한 모놀리스 시스템을 Kubernetes 환경으로 점진적으로 이주시키는 전략을 담은 이 보고서는 저의 기술적 자부심 그 자체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진심 어린 조언과 응원을 보내준 학교의 튜터에게는 지금도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오랫동안 현장을 떠나 있었더니 몸이 근질거릴 정도로 일이 그리웠던 걸까요? 비록 한국인 업체에서의 인턴십이었지만, 다시 코드를 만지고 시스템을 만지며 무뎌졌던 실무 감각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의 이론적인 논의를 넘어, 실제 동작하는 서비스를 개선하고 최적화하는 과정은 저에게 큰 활력이 되었습니다. 이 기간은 훗날 대기업 시니어 오퍼를 마주하기 전, 기술자로서의 날을 다시 날카롭게 벼리는 소중한 완충(Buffer) 기간이 되었습니다.

다음 편 예고: Vol.4 정면돌파
졸업 후 비자가 발급되자마자 억눌러왔던 에너지를 쏟아냈습니다. 40군데의 지원, 그리고 숨 가쁘게 이어진 4곳의 동시 면접. 최저시급 인턴에서 글로벌 대기업 시니어 엔지니어로 단숨에 뛰어오른 그 치열한 정면돌파의 기록을 다음 리포트에서 공개합니다.
“뉴질랜드 IT 인턴십 현실: 최저시급에서 기술적 증명까지의 생존 전략 (뉴질랜드 IT 취업 리포트 Vol.3)”에 대한 1개의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