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렌트 누수 : 천장 누수, 그리고 ‘나 몰라라’ 유학원 실체

뉴질랜드 북섬의 겨울은 궂은비가 끊이지 않는 우기(雨期)입니다. 밖에는 비 갠 뒤 무지개가 잠시 머물다 가며 평화로운 풍경을 자아냈지만, 우리 집 거실의 풍경은 사뭇 달랐습니다. 천장 매립등(Downlight) 사이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뉴질랜드 집은 원래 다 그렇다”며 인내만을 강요하던 유학원의 무책임한 가스라이팅, 그리고 곰팡이의 원인을 세입자의 관리 소홀로 몰아가는 부동산의 뻔뻔함까지. 이방인 가장으로서 가족의 건강과 안전이 위협받는 순간, 저는 직감했습니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영락없이 ‘말 잘 듣는 호구’가 되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저는 그 비겁한 평화를 깨기로 마음먹고, 뉴질랜드 임대차 분쟁 조정 기구인 테넌시 트리뷰널(Tenancy Tribunal)의 문을 두드리기로 했습니다.

천장에서 시작된 누수와 곰팡이

맑은 날의 귀함, 그리고 찾아온 우기

날이 조금이라도 화창하면 현지인들이 왜 타카푸나 해변으로 쏟아져 나오는지 그제야 이해가 되었습니다. 뉴질랜드의 겨울은 혹독할 정도로 길고 습했습니다. 비가 한 번 시작되면 무섭게 퍼붓는 것은 물론, 때로는 우박까지 쏟아지곤 했습니다. 당시 오클랜드의 수해 소식을 접했던 터라, 빗소리가 커질 때마다 제 불안함도 층층이 쌓여갔습니다.

잘못 본 것이길 바랐던 축축함

본격적인 우기가 시작되던 어느 날, 우려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작은 방과 큰 방 천장, 매립등 주변에 옅은 물기가 서린 것을 발견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기분 탓이길, 혹은 단순한 결로이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직접 손을 뻗어 확인한 천장은 차갑고 축축했습니다. 며칠간 쉼 없이 쏟아진 비가 기어코 이방인의 안식처를 파고든 것이었습니다.

렌트 집 천장누수
북쪽 작은 방 천장에서부터 이미 누수와 곰팡이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독버섯처럼 번지는 곰팡이

작은 방 구석에서 시작된 거뭇거뭇한 곰팡이는 보란 듯이 세를 불려 나갔습니다. 세정 티슈로 닦아내고 정성껏 말려보았지만 임시방편일 뿐이었습니다. 비가 오면 어김없이 물자국이 다시 생겨났고, 곰팡이는 매립등 주변을 잠식해 들어갔습니다.

거실 천장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을 때, 전기 사고에 대한 공포는 실재하는 위협이 되었습니다. 누수된 자리마다 피어오르는 검은 곰팡이는 마치 우리 가족의 안위를 조롱하는 독버섯 같았습니다.

북쪽 큰 방 매립등 주위로도 물이 새기 시작했습니다. 무려 세 곳에서 누수가 발견되었습니다.

뻔뻔한 인스펙션: “이건 누수가 아닙니다”

가해자가 된 피해자, 기만적인 전문가의 시선 

처음 방문한 중국계 여성 부동산 관리인은 짐짓 적극적인 척 연기했습니다. 그녀는 우리에게 히트펌프를 충분히 가동하지 않아 생긴 문제라며, 오히려 ‘올바른 주택 관리법’을 훈계하더군요. 하지만 우리는 입주 첫날 이미 히트펌프의 처참한 상태를 확인하고 부동산 측에 통보한 상태였습니다. “필터는 찢어지고 내부에는 곰팡이가 가득해 도저히 사용할 수 없다”라고요.

심지어 히트펌프는 작동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가족의 호흡기를 위협하는 오염된 기계를 틀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관리인은 며칠 뒤 기술자들을 대동하고 나타났습니다. 한국식의 꼼꼼한 세척을 기대했지만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그들은 어디서 주워온 듯한 낡은 걸레로 기계 내부를 슥슥 닦아내는 시늉만 하고는 소임을 다했다는 듯 행동했습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외면한 채, 고장 난 기계를 빌미로 세입자의 ‘관리 소홀’을 주장하는 정교한 기만이었습니다.

겨우 걸레로 한 번 닦아내는 흉내를 내는 데에 기술자가 세 명이나 필요했습니다.

연발하는 “This is bad”와 비닐 텐트의 예고 

상태가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지자 다시 집을 방문한 관리인은 곰팡이를 확인하더니 연신 중얼거렸습니다. “Oh, this is bad. This is bad.” 본인들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것이죠. 뒤이어 온 기술자들은 천장을 비닐로 덮고 곰팡이를 긁어낸 뒤 페인트칠을 다시 해야 한다며, 꼬박 2~3일이 걸리는 대공사를 예고했습니다.

하지만 대공사를 시작하기 전, 다시 전문가를 보내 인스펙션(Inspection)을 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누수를 처음 발견한 것이 6월 8일인데, 제대로 된 수리를 약속받은 이 시점이 벌써 7월 1일이었습니다. 꼬박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점검’만 반복되는 상황에 입술이 바짝 타들어 갔습니다. 이러다 뉴질랜드의 혹독한 겨울이 다 지나가겠다는 절박함이 밀려왔지만, 저는 일단 알았다고 답했습니다. 며칠간의 생활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가족을 위해 완벽한 수리가 이루어지길 바랐기 때문입니다.

약속된 인스펙션 전날, 도착한 사진 한 장의 기만 

약속된 인스펙션 전날이 되었지만, 부동산 측에서는 아무런 구체적인 안내가 없었습니다. 기다림 끝에 결국 제가 먼저 연락을 취했습니다. 전문가의 점검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확인하려던 정당한 물음이었으나, 돌아온 답변은 황당했습니다. 관리인은 대뜸 인스펙션 대신 ‘공사’를 하겠다고 통보해 왔습니다.

그들이 말한 공사의 실체는 문자 메시지에 담긴 사진 한 장으로 드러났습니다. 화면에는 대형 마트에서 흔히 파는 저렴한 곰팡이 제거제 사진이 띄워져 있었습니다. “내일 방문해서 이걸 뿌리는 것으로 해결하겠다.”

비닐 텐트를 치고 천장을 긁어내겠다던 거창한 약속은 온데간데없었습니다. 인스펙션을 통해 원인을 파악하겠다던 말도 사라졌습니다. 오직 제거제 한 통으로 모든 상황을 뭉개버리겠다는 기만(欺瞞)적인 선언뿐이었습니다.

인스펙션 바로 전날 오후 6시가 지나도록 연락이 없었습니다. 참다못해 문자를 보냈더니 하는 말이 처음 약속과 다릅니다.
“뭐? 갑자기 수리를 한다고? 페인트칠을 새로 하겠다더니, 우린 전혀 준비가 안 됐어.”
임대차 분쟁 이야기를 꺼내자 당황했나 봅니다. 제 메시지를 다른 누군가에게 복사해서 보내려다 실수로 제게 그대로 다시 보내셨군요.
“그래? 이게 곰팡이 제거에 탁월한 제품이라고? 지금 장난해?”
정중하게 거절했습니다. 인스펙션 온다더니 갑자기 수리를? 게다가 곰팡이 제거제라니. 됐어. 임대차 분쟁 가자.

‘우리 편’은 없었다: 나몰라라 유학원 실체

방관자의 온도 

기가 막힌 심정으로 마지막 보루였던 유학원에 도움을 청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온도는 뉴질랜드 우기의 빗물보다 차가웠습니다. “그냥 참고 사세요” 유학원이 건넨 말은 중재가 아니라 가스라이팅(Gaslighting), 즉 타인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어 심리적으로 지배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들에게는 세입자의 고통보다 집주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 훨씬 중요한 비즈니스 원칙이었을 뿐입니다.

장사치들의 화려한 거짓말

현지 유학원들이 비성수기에는 운영조차 힘든 영세 업체가 많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토록 무능하고 책임감이 없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SNS에서는 뉴질랜드의 환상적인 모습만 보여주며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하더니, 정작 고객이 위기에 처하자 본색을 드러낸 것입니다.

처음에는 유학원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움직임은 중재가 아닌 ‘시간 끌기’에 가깝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무엇이 그토록 조심스러운 것인지, 중간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변해버린 그들의 태도. 전화기 너머 한숨 섞인 목소리로 들려온 “아버님, 그냥 참고 사세요”라는 말은, 타지에서 믿었던 마지막 보루가 무너지는 처참한 배신감이었습니다.

어쩌면 그들에게 저는 케어해야 할 소중한 가족이 아니라, 이미 수수료를 지불하고 유효기간이 지나버린 ‘상품’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기본적인 점검조차 거치지 않은 집을 골라주고도 “원래 그렇다”는 말로 책임을 회피하는 그들의 태도에서, 프로정신 대신 비겁한 장사치의 계산기 두드리는 소리만 들려왔습니다. 타지에서 느낀 고립감은 천장의 곰팡이 냄새보다 지독했습니다. 본질(本質)을 잃어버린 그들의 방관은 위로가 아닌 명백한 폭력이었습니다.

이방인의 반격: “어디 한 번 해봐라”라는 도발

선전포고와 오만한 대답 

더 이상 유학원의 무기력한 조언에 기댈 이유가 없었습니다. 가족의 건강을 마트용 제거제 한 통과 맞바꿀 수는 없었으니까요. 저는 부동산 관리인에게 최후통첩을 보냈습니다. “이런 기만적인 태도는 받아들일 수 없다. 정식으로 소송을 제기하겠다.”

돌아온 반응은 예상보다 훨씬 오만했습니다. 관리인은 비웃듯 대답하더군요. “좋다, 어디 한번 해봐라.” 그들에게 저는 영어가 서툴고 현지 법에 어두운, 그저 잠시 머물다 갈 만만한 이방인에 불과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습니다. 건드리지 말아야 할 가장의 역린(逆鱗)을 건드렸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의외의 승낙과 예상치 못한 조언: Mediation의 시작

부동산의 변심, 그리고 흔쾌한 합의 

신청서를 접수하고 꼬박 한 달이 지났습니다. 마침내 전화 중재인 메디에이션(Mediation) 일정이 잡혔습니다. 그사이 저는 부동산 관리인에게 먼저 물었습니다. “혹시 계약을 조기에 종료하는 것에 합의할 의사가 있느냐?”

뜻밖에도 대답은 흔쾌했습니다. “좋다. 대신 다음 세입자를 위한 집 구경(Viewing)에 적극 협조해라.” 그토록 당당하게 버티던 그들의 태도가 이토록 쉽게 꺾인 건, 아마도 실제 법적 절차가 시작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압박이 되었기 때문일 겁니다. 드디어 원하던 ‘탈출’의 기회가 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부동산 측이 선심 쓰듯 보내온 계약 조기 종료 조건. 정당한 수리 요구를 묵살하며 시간을 끌던 그들이, 이제 와서 은혜를 베푸는 양 던지는 제안이 가증스러울 따름입니다.

“이왕 시작한 거, 보상까지 받으세요” 

조기 종료 합의가 이루어졌으니 소송을 취소해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절차를 확인하기 위해 테넌시 트리뷰널 측에 문의했죠. 그런데 상담원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상대와 합의를 했더라도, 취소하지 말고 그대로 진행하세요. 당신이 겪은 피해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청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 대답은 저에게 새로운 각성을 주었습니다. ‘그저 나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제가 너무 안일했던 것이죠. 저는 예정된 중재 절차를 멈추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제 목표는 단순히 이사를 나가는 것이 아니라, 무너진 상식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아내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에필로그: 고립된 이방인을 지켜준 뜻밖의 방패

사실 모든 과정이 두렵기만 했습니다. 도와줄 사람 하나 없는 낯선 타지에서 거대해 보이는 시스템과 싸워야 한다는 사실은 밤잠을 설칠 만큼 큰 걱정거리였습니다. 확신도 없었지만, 그저 끝까지 가보자고 마음을 다잡았을 뿐입니다.

하지만 정작 저를 든든하게 붙들어 준 것은 뉴질랜드의 테넌시 트리뷰널(Tenancy Tribunal)이었습니다. 이런 분쟁이 일상처럼 흔해서일까요? 뉴질랜드의 제도는 집주인의 책임을 명확히 규정하고, 약자인 세입자를 실질적으로 도와주는 체계가 놀라울 정도로 잘 갖춰져 있었습니다.

부동산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와 임대차 분쟁 조정소 담당자의 예기치 못한 격려. 이 모든 과정은 저에게 ‘이방인도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실질적인 감각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결국 조기 종료 합의는 이루어졌지만,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한 싸움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던 전화 중재의 실제 현장과, 끝내 받아낸 보상금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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